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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 – 한 사람의 삶이 남긴 커다란 울림

by yun0709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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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세상의 병든 이들에게서 나온 이윤이니, 나를 위해 쓸 수 없다.”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을 검소하게 살면서도 지역사회 전체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람, 김장하. 이름 석 자가 그 자체로 진주 시민사회에 '신뢰'로 통하는 인물. 그는 한약업사이자 교육자, 시민운동가, 무엇보다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삶의 실천가였습니다.

가난에서 시작된 길

1944년 1월, 경남 사천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때 약방 점원으로 일하며 스스로의 삶을 일구었습니다. 19세에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해 약방을 차리고, 그것이 50년 가까이 운영된 진주의 '남성당한약방'의 시작이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사회를 위해 썼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온전히 지역사회로 되돌아갔습니다. 가난한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나누고,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문화예술과 인권운동, 지역 언론까지 가리지 않고 후원했습니다. 1984년에는 무려 100억 원 이상의 사재를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 뒤, 1991년 국가에 헌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 학교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공공의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는 후원, 스스로를 숨긴 삶

그는 수많은 이들의 학비를 지원하고도 단 한 번도 이름을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인터뷰는 물론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는 철저한 익명주의.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제작진은 7년이 넘는 취재 끝에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고, 수많은 이들이 그제야 비로소 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치와 거리를 둔 원칙 있는 삶

진주시장 시민후보로 추대되었을 때조차 만남을 피하며 “나는 정치인 될 사람이 아니다”고 했던 그는, 정치자금은 절대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평생 지켰습니다. 오직 사람과 삶, 공동체만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살아 있는 사회보장제도’

극단 현장, 진주문고, 여성민우회,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진주문화연구소… 김장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진주 지역 단체는 거의 없습니다. 2021년 남성문화재단 해산 당시 남은 34억 원 전액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하며 끝까지 '환원'을 택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2022년 한약방 문을 닫고 은퇴한 그는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한약방 건물은 ‘진주 남성당교육관’이라는 이름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며, 2025년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한 도시의 정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별, 남성(南星)

김장하 선생의 호는 ‘남성(南星)’. 남두육성,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별입니다. 그는 이 별처럼 사람들을 오래 살게 하고, 따뜻하게 살게 하고, 의미 있게 살게 했습니다.

그는 평생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여행이라곤 전쟁통에 생사를 알 수 없던 형을 만나러 간 평양행이 전부였습니다. 소박했지만 깊었고, 조용했지만 울림이 큰 인생.

그런 사람이 있어, 우리는 세상을 더 믿을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을 기억하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나눔’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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